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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youngcg님의 댓글
sunyoungcg 작성일
심오한 내용일 것 같아요~ 기대!
mincho07님의 댓글
mincho07 작성일
재미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에 머물렀다"라는 번역을
"그리스도마저 도착하지 않은 오지에 관한 글임을 안다면 절대 붙이지 못할 제목이다."
라고 하신 부분과 관련해서 저도 비슷한 고민과 의문을 품은 적이 있었습니다.
Cristo si e` fermato a Eboli / Christ stopped at Eboli
원제는 이탈리아 남부에 신의 은총이 미치지 못했음을 말하려는 것 같은데,
왜 에볼리에 와서 '멈추었다(si e` fermato / stopped)'라고 표현했을까요?
(오히려 '에볼리에 오지/멈추지/머물지 않았다'는 부정문이 더 어울리겠다는 생각도 했더랬습니다.)
원문 동사를 우리말로 '오셨다came / 멈추었다stopped / 머물렀다stayed ...' 등등 어떻게 옮겨도,
에볼리가 은총에서 벗어난 장소임을 나타내기에 적절해보이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가 오셨든 멈추셨든 머무르셨든 그 장소는 은총이 닿은 곳일 테니까요.
최근 카를로 레비의 원작과 지도를 찾아보면서 의문이 많이 풀렸습니다.
문제의 출발은, 유배지로의 여정을 간결하고 처연하게 압축한 영화의 도입부였습니다.
에볼리역에서 피스티치역을 거쳐 갈리아노까지 유배의 여정이 작품제목과 화학 작용을 일으킨 덕에,
지리적 맥락을 모르는 관객은 '에볼리'를 '버려진 남부'의 대명사로 인식하게 되고,
또한 유배지 갈리아노를 '에볼리(지방)'의 어느 마을일 것이라고 추측하게 되는데,
바로 이런 추측이 결정적인 오해를 낳습니다.
실상은 이렇습니다:
- 에볼리는 서해안의 먹고살 만한 살레르노 항에 맞닿아 있는 농촌마을입니다.
(우리로 치면 평택 대천 등 서해안 항구 인근의, 기차역이 있는 소읍 정도에 해당하겠지요.)
- 유배지 갈리아노/알리아노 마을은 남부 황량한 루카니아 지방의 마테라 읍 근처입니다.
(우리로 치면 단양, 영월, 봉화 등지의 어느 작은 산골마을에 해당할 듯합니다.)
- 에볼리는 행정구역상 루카니아 지방에 속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에볼리에서 갈리아노까지 이동거리는 200킬로미터에 달합니다.
(우리로 치면 평택-제천을 주파한 다음, 다시 강원도 산골 마을을 찾아가는 여정?)
따라서 원제의 '에볼리'라는 지명은 버림받은 남부를 대표하는 단어가 아닙니다.
정반대입니다. 에볼리는 신의 발길이 닿은 은총의 장소들을 상징적으로 나타냅니다.
설혹 에볼리가 은총의 권역 내에서 중심이 아니라 변방에 위치한다 해도,
그리스도가 최소한 에볼리까지는 와서came 발길을 멈추고stopped 머물렀던stayed 덕에,
에볼리의 주민들은 은총의 떡고물이라도 받아먹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에볼리 너머 남부의 버려진 루카니아 지방에는 그리스도의 발길이 닿지 않았고,
그 중의 오지 중 오지인 갈리아노 마을 따위엔 더더욱 오실 리 없었다는 종교적 은유가
작품을 관통하고 있고, 또 제목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그리스도가 에볼리에 '오셨든came, 멈추셨든stopped, 머물렀든stayed'
번역상 아무 문제가 되지 않고, 작품의 요지를 배반하지도 않습니다.
어차피 에볼리 너머의 버림받은 땅 루카니아 지방과 갈리아노 마을엔
그리스도가 발을 들이지 않으셨으니까요.
도식적으로 요약하자면, 제목에 얽힌 오해는 아래의 지리적 사실을 통해 풀어야 합니다.
- 유배지 갈리아노 마을로 대표되는 루카니아 지방은 신의 발길이 미치지 않은 저주받은 곳,
- 반면 루카니아의 경계 밖에 위치한 에볼리는 그나마 그리스도의 발길과 은총이 와닿은 곳.
이러한 대립쌍의 한쪽 끝에서 버려진 사람들의 삶이 작가의 시야에 포착되어 그려지는 것입니다.
제목과 관련해서 비슷한 의문을 품으셨던 분들께 혹여 도움이 될까 하여 장황하게 적어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