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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sukzine님의 댓글

profile_image gusukzine 작성일

그러나 어쩌면 그 '새' 또한 '새장 속의 새'이며 그 아이는 결국 그 새를 날려보내지 않은 것은 아닐까요? 그런 맥락에서 보았을 때 이전 세대가 가르치는 도덕과 교훈이라는 것이 그 아이에게도 그대로 전이되어 버렸던 것은 아닐까요? 새를 날려보내지 않은 것을 추궁 받지 않는 건은 어쩌면 그러한 '자기만의' 슬픔의 묵인에 의해서만이 가능한 것이 아닐까요?

jinious7님의 댓글

profile_image jinious7 작성일

각 가정의 에피소드들이 비밀들을 함의한채 내러티브를 구축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긴장감이 덜하고 영화적 흥미가 적었다는 의견에는 동의가 되지 않네요. 이 영화의 단선적인 내러티브와 나레이션은 영화를 사실이자 다큐처럼 보이고 싶어하는 의도인 것 같습니다. 이 영화는 조용한 마을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범죄들을 저지른 범인들이 누구인지에 대한 질문을 계속하면서 마지막에 느닷없이 아이들이 범인일 것이라는 뉘앙스를 풍기면서 끝나지만 이것이 결코 장르적인 쾌감과 연결되지는 않습니다.
영화 속에서는 두가지 양상의 범죄를 담담하고 침참하게 제시합니다. 하나는 의사의 낙마사고, 남작 아들과 장애아 폭행 등 표면적인 범죄이고, 다른 하나는 이 마을에서 오랜 동안 이루어지고 있는 상습적이며 은밀한 범죄들, 즉 간통, 근친상간, 경제 불평등, 종교적 억압과 같은 죄악들입니다. 이 두가지 범죄 양상들이 영화 속에서 계속 교차되어 나타나는데, 전자와 같은 표면적인 범죄에 대해서는  마을 사람들이 경악과 공포를 느끼지만 후자와 같은 근원적인 죄악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인지 능력이 없습니다. 이것이야말로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인류의 윤리의식에 대한 문제 제기라 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범인일 것이라는 암시 또한 중요한데, 왜냐하면 범죄의 피해자들이 대체로 악행에 대한 복수와 연결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남작의 아들 폭행은 남작의 악행에 대한 복수이며, 의사에 대한 사고 유발은 자기 딸을 범하는 악행을 저지른 것에 대한 댓가이며, 장애아 폭행은 의사의 간통으로 태어난 사생아일 것이라는 추축이 낳은 결과입니다.
결국 아이들은 어른들의 세계에 대한 나름의 응징으로 폭력을 택한 것이고, 이것은 결국 어른의 방법을 답습한 것이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른들의 파시즘은 결국 아이들의 파시즘으로 이어지며, 감독이 말했듯 이 영화는 파시즘의 기원을 묻는 영화가 되는 것이죠.
날려보내지 못한 새의 의미도 위 글보다는 아래 글쓰신 분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원래 새장 속의 새가 목사 딸의 반항의식으로 죽게되자, 또 다른 새로 대체된다는 의미가 희망으로 읽히기는 어려울 것 같네요. 오히려 기존 체제에 대한 세습을 상징하는 게 맞지 않을까요?